팩토리와는 이미 다양한 역할과 관계 안에서 함께 해 온 최경주 작가가 팩토리2에서 개인전을 연다. 작가는 평소 일상 속 작은 사건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다층적인 내면의 구조를 중첩한 레이어에 정제된 기호를 포개어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팩토리와는 앞서 <Typocraft in Helsinki>(2017), <Island>(2018), <Take Me Home>(2019), <Tool Tool Tool>(2019), <오늘의 날씨>(2021), 그리고 최근 루프트(Luft, 오키나와)와 협업한 팩토리 에디션 제작(2022)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계로 함께 해왔다.

이번 <점점이 비치는 붉음> 전시에는 최근 작가가 서로 다른 곳에 위치했던 작업실과 주거공간을 최근 한 공간에 모아 재구성하며 느낀 것을 때론 담담하게, 때론 매우 치열하게 기록했다. 전시 타이틀인 ‘점점이 비치는 붉음’은 아일랜드 태생인 사뮈엘 베케트가 자기만의 고유한 언어를 찾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마치 “초록 속 점점이 비치는 붉음”을 어찌할 수 없었던, 나탈리 레제의 베케트 전기 속 이야기를 참고한 것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전시 타이틀인 ‘점점이 비치는 붉음’은 나탈리 레제가 쓴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중 “넘쳐흐르는 초록 속 점점이 비치는 붉음”에서 온 것이다.
이 구절은 아일랜드 태생인 사뮈엘 베케트가 자기만의 고유한 언어를 찾기 위해 일부러 자기 정체성의 본질을 부정하고 지우고자 노력했음에도 결국에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말았던 것을 은유하는 부분이다. 최근 나는 스스로를 낯선 환경에 놓으며 마주한 양가적인 심상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들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보면 베케트의 고백처럼 투명하게 드러나 버린 나의 정체성을 보는 듯했다. 이번 전시는 낯선 환경 속에서 나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나만의 언어, 잠재되어 있던 새로운 나의 모습들이 켜켜이 올라오면서 느낀 당혹감과 반성, 그리고 그 정체성의 주변을 살펴온 여정과 각 단편을 모아 기록한 것이다. 
<작가 노트 중>

*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김예령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4
** 포자(spore)의 어원은 라틴어 ‘spor’ (살포하다)에서 유래하였으며,이에 식물 및 진균류에서 포자란 용어는 어미의 유전체를 널리 확산시키는 단세포 단위체를 말한다. (식물학백과)


최경주 작가는 미취학 아동 시절, 즉 모국어가 자리 잡히기도 전에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하며 보냈던 몇 년, 그리고 20대 초반 갓 성인이 되어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의 몇 년의 시간을 가진 바 있다. 매우 이질적인 문화를 중요한 성장 시기에 보내는 시간을 반복하며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언제나 이방인을 본다. 이번 전시는 이사를 기점으로 마주한 낯선 공간에서 자신만의 (작업) 언어를 찾아가는 전시로, 새로운 도약을 마주한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를 살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주요 작업은 의심과 확신을 오가는 마음을 표현한 <mind map> 애니메이션 영상,낯선 공간에서 마주한 강박을 표현한 <그리드 드로잉> 30점, 적응을 위한 새로운 행동과 관점을 대입하며 제작한 오브제 <포자>**, 그리고 공간 속 본인의 물리적/정신적 소통방식을 '거즈'라는 매체로 표현한 <반투명 벽> 6점 등이다. 낯선 공간을 투명하게 마주하며 기록한 이들 작업이 서로 교차하며 전시장에 만든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었다.



전시명. 점점이 비치는 붉음
작가. 최경주
장소. factory2,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기간. 2022.9.2(금)-9.25(일)
관람 시간. 화-일요일, 11-19시 월요일 휴관

기획. 팩토리2(factory2)
진행. 김보경, 이경희, 이지연
그래픽 디자인. 김보경
설치 도움. 손정민
주최. 팩토리2(factory2)


<Grid Drawing Series> (2022)
종이에 과슈



︎︎︎<반투명 벽> (2022)
︎︎︎거즈천 위 나염 및 재봉질 / 혼합매체



︎︎︎<포자> (2022)
실리콘, 철사,석고 붕대




︎︎︎<그림자 모음> (2022)
︎︎︎장지 위 바니시 드로잉






︎︎︎<복숭아씨> (2022)
아이소핑크 조각 위 나염 거즈천 ,바느질




︎︎︎< 반투명 벽> (2022)
거즈천 위 나염 및 바느질 드로잉 , 폴리솜, 코팅 거즈천 꼴라주


︎︎︎< Grid Drawing Series>중 첫번째 드로잉



* 나탈리 레제, <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 김예령 옮김, 워크룸프레스, 2014
** 포자(spore)의 어원은 라틴어 ‘spor’ (살포하다)에서 유래하였으며, 이에 식물 및 진균류에서 포자란 용어는 어미의 유전체를 널리 확산시키는 단세포 단위체를 말한다. (식물학백과)

작가 노트- 최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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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다. 이번 집은 작업실과 연결되어 있다. ‘생활 반경 안에서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지 일 년 반만의 결정이었다.

떨어져 있던 두 살림을 합치는 일은 힘들었다. 뒤죽박죽 섞인 짐들과 완성되지 않은 공사, 그리고 임시로 가린 비닐과 아크릴판 속에서 드로잉을 했다. 낯선 공간 안과 임시로 가린 얇은 막 사이로 밖이 희미하게 보이는 곳에서 왜곡된 형상과 최소한의 색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그릴지에 대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 낯선 공간은 그릴 것투성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전 공간과는 다른 P(아크릴)판, 붉은벽돌과 타일 바닥, 나무 바닥의 그리드가 가장 처음 눈에 들어왔다. 정리가 조금 된 후 드로잉을 다시 보니, 당시 정리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질서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정리될수록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압도당했던 ‘낯섦’은 시간이 지날수록 겹겹이 나다운 공간으로 바뀌며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지우고만 싶었던, 이전에 머물다 떠난 이들의 흔적들이 차차 납득이 되고 또 소소히 발견하면서 나의 방식대로 재정비하는 재미가 생겼다. 유연한 천들로 둘러싸인 작업실과 생활 공간을 오가며 온전히 나다운 집안을 만들어간다.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거즈

뒷마당을 처음으로 쓸기 시작한다. 장마 기간에 흐르는 물을 따라 낙엽이 배수구를 막을 것이 염려되어 부지런히 하다 보니 이내 습관이 되어버렸다. 하루가 지나면 죽은 벌레와 거미 그리고 번데기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단단한 껍질 속 은신처에서 성장 후 버려진 껍질들은 곧 나의 이전 챕터. 어딘가로 날아간 생명체들의 다음 챕터를 응원하며, ‘거즈’라는 재료가 생각났다.

거즈는 연약해진 상태의 피부 위에 얹힌다.
거즈는 보호막이지만, 단절이 아닌 정제된 연결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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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노트 - 이경희 (에디터, 기획자)

이번 씨앗이 만들어낼 그다음의 씨앗을 상상하며

지난봄 작은 씨앗을 받았다. 씨앗이 마르지 않도록 이따금 수분만을 보충한 거즈 위에 살포시 올려진 씨앗은 금방 떡잎을 내놓았고, 약 보름이 지나서는 작은 화분에 옮겨주어도 될 만큼 새싹이 올라왔다. 이번 여름 우리 가족은 이 작은 화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바질잎을 수확했다. 매일 마주하는 이 작은 화분을 보며 최경주 작가를 떠올린다. 자신만의 (작업) 언어를 찾기 위해 쉼 없이 바깥의 것들을 한껏 흡수하고 참으로도 착실하게 그 결과를 내어놓는 작가의 사이클은, 자고 일어나면 크게 자란 잎을 뽐내고 어느 사이 또 곳곳에 새롭게 잎을 돋아내는 바질 화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를 지켜보며 나는 줄기가 제법 단단해진 바질을 떠올렸고, 이어 생각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화분에 또 다른 씨앗을 심었구나.’

최경주 작가의 2022년 전시 <점점이 비치는 붉음>에는 수십 장의 드로잉이 만들어낸 영상, 일기와도 같이 일상에서 마주한 생각을 옮긴 채색드로잉, 포자의 모양을 한 오브제 등이 선보인다. 자신의 생각을 매체를 가리지 않고 표현한 작가의 이력은 이미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전에 ‘고정된 이미지’ ‘특정 의미’ ‘구체적인 것’을 의도적으로 피했던 태도*와는 분위기가, 지향하는 지점이 조금 다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끝없이 확장하고자 했던 에너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시간을 관통하는 동안, 마치 송곳과 같은 뾰족하고 긴 것으로 응축되어 정확한 과녁을 찾는 듯하다.

작가는 최근 이사를 했다. 떨어져 있던 작업실과 주거공간을 합체했다. 새로운 공간, 더 정확히는 본인이 선택했지만 과연 잘한 선택인지 잘 모르겠는, 그래서 낯선 공간 속 나는 누구인지, 내 본래의 (고정된), 나만의 (특정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은 무엇인지 차근히 공간을 정리하며 곱씹었다. 실눈을 뜨고 온 집중력을 다해 ‘지금 이곳의 나’를 규정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투명도 50%’의 내가 있는 이 공간을 정리하는 동안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장 잘 해왔던 그 ‘의도한 우연이 빛을 발하는’ 기존의 작업방식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기에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 중 <그리드 드로잉> 30점에는 그때그때 느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더욱 여과 없이 드러날 것이다.


쌓여가는 작업과 함께 작가는 하나의 마음이 아주 멀리 떨어진 지점을 오가는 감정에 이따금 당혹스럽다. 스스로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던, 혹은 잊고 지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간에 재구성된 기존의 일상 속 물건과 작업은 모두 작가의 손을 거친 것임에도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 또한 재조직되는 듯하다. 처음으로 돌아가 애초 찾으려 했던 본래의 모습은 뜨거운 곳에도 차가운 곳에도 있었음을 인지한다. 낯선 곳은 처음엔 두려움도 있었지만 오히려 새로운 창으로 자신을 던지는 계기가 될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모른 척 묻어두었던,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한 원래의 모습만 확인한 것 같아 혼란스럽다. 그렇게 이번에도 스스로가 이방인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번 작업은 그치는 것일까?** 그렇다면, 작가는 원점으로 돌아와 같은 씨앗을 심은 것일까? 다시 그렇다면, 그 원점을 확대하고 또 확대해 500배로 커다랗게 본다면, 그 모습은 과연 과거의 출발 지점과 같은 지형의 모습일까?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작가가 심은 씨앗은 어떻게 자라 훗날 어떤 씨앗을 만들어낼까?

* ref. 최경주 2021 개인전 <녹는점> 중 <녹는점-무국적 정원에서의 대화>(w/김현아) 인터뷰 참조.

** 작가는 미취학 아동 시절, 즉 모국어가 자리 잡히기도 전에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하며 보냈던 몇 년, 그리고 20대 초반 갓 성인이 되어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의 몇 년의 시간을 가진 바 있다. 매우 이질적인 문화를 중요한 성장 시기에 보내는 시간을 반복하며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에서 언제나 이방인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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