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at) PLATZ 2> _ 서재우 디렉터

AP는 판화가 최경주의 작업 방식이 스며든 프린팅 레이블로 ‘Artist Proof’의 약어다.
‘작업자가 의도한 정확한 색을 맞추기 위해 테스트 인쇄를 한다’는 판화 용어에서 따왔다. 다시 말해 AP는 판매 목적이 아닌 작가가 소장하는 에디션을 의미한다. 판화가는 가장 잘 찍히거나 실험적인, 그래서 애착이 가는 판을 주로 소장한다. 하지만 최경주는 역설적으로 AP로 명명한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상품화한다. 구매자에게 스스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 창작물의 가치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함이다. AP는 최경주가 운영하는 레이블인 동시에 작가로서 자기 작업에 가치를 부여하는 과정인 셈이다.

최경주가 ‘Artist Proof’로 명명한 작품을 처음 선보인 건 2014년으로, 검정과 별색을 사용해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적 형태의 실크스크린 작품은 흰 바탕에 검정 이미지가 새겨진 판화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낯섦이 존재했다. 게다가 최경주의 작업 행보를 볼 때 그를 판화가로 지칭하는 건 그의 작업을 한정 짓는 것만 같아 아쉽다. 오히려 그를 판화적 은유를 실천하는 작가로 부르는 게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최경주의 작업은 평면적 사고에 머물러 있지 않을뿐더러, 실크스크린 작업이 가능한 모든 물성을 재료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는 손으로 종이를 묶어 노트를 만들고, 필요에 따라 손바느질을 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현수막과 티셔츠, 세라믹 오브제, 음반 등 일상에 마주하는 취향이 깃든 물건도 판화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덕분에 최경주의 판화는 예술과 상업의 경계 없이 미술관과 개인 집 구석구석 스며들 수 있었다.

Artist Proof를 독립 프린팅 레이블로 인식한 건, 2016년 북창동 한적한 길목에 ‘AP SHOP’이 생긴 이후다. AP SHOP은 이름 그대로 최경주가 AP로 정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숍으로, 최경주는 이를 통해 고객을 자신의 작업 세계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에게 숍은 물건만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자기 시간이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곳이다. “저와 AP SHOP은 채워주고 비워내는 관계입니다.” 최경주의 말이다. 실제로 AP SHOP은 자신의 작업실, 친구들의 아지트, 음악가의 공연장, 고객을 위한 숍과 전시장으로 기능하며, 한 개인의 삶 속에 침투하는 다양한 사건을 탑처럼 쌓았다. 그리고 이는 판화가만의 방식 중 하나인 ‘레이어를 찍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판화는 다양한 층위의 형상을 찍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찍어낸다는 것은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판화가는 작업을 위해 허투루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걸 의미한다. 대개 판화를 상업적인 매체로 생각하는 건 이미지가 새겨진 동판 하나를 통해 대량 생산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경주는 대량 생산보다 하나의 그림이 새겨진 동판이 갖는 개별성에 주목한다. 독립된 직선과 곡선, 사각형과 원형 등 구조적 이미지가 새겨진 각각의 동판을 사용해 다층적 레이어를 쌓는 것이 그만의 독자성이기 때문이다. 최경주는 자신만 아는 균형과 아름다움을 작품과 상품 상관없이 동일한 방법으로 표현한다. AP와 자신을 분리할 수도, AP와 AP SHOP을 떼어 설명할 수도 없는 이유이다.

현재 AP SHOP은 온라인 숍(WWW.APSHOP.KR)이 됐고, 최경주는 연희동으로 터를 옮겨 ‘AP STUDIO’를 열었다. 이는 같은 동판을 다른 방법으로 찍어내는 지극히 판화가 다운 성장이다. 최경주가 Artist Proof라는 명칭을 사용한 지 9년이 흘렀지만, AP는 여전히 동일한 방법으로 작품과 상품을 세상에 선보인다. 물론 형태도 색조도 동일한 걸 찾기가 어렵지만, 최경주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최경주는 변함없이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떠오르는 이미지를 선과 형태로 그려나간다. 때론 이 형태가 그림에 적합하다면 그대로 남겨두고, 오브제의 형태로 확장한다면 오브제를 만든다. 그림과 오브제를 선택하는 과정은 모두 직관에 맡긴다. 당장 내일의 일도 예측할 수 없는 게 현실인 것처럼 그도 자신의 시작한 선이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자리할지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자연스레 선택되고 형태에 어울리는 색조와 형태를 얻게 되는 것이다.

는 AP의 9년을 담은 전시이지만, 변곡점도 꼭짓점도 아니다. 오히려 확장하는 길목의 산물에 가깝다. 최경주가 자신과 특별한 연이 없는 성수동이라는 낯선 동네를 무대로 삼은 것도 AP의 새로운 레이어를 쌓기 위함이다. 플라츠 2 건물 2~3층에 위치한 전시 공간인 ‘커런트’에는 실크스크린 판으로 만든 매대와 AP의 작업을 모아둔 ‘AP Fabric Archive’ 존이 마련돼 있다. 이는 작가와 관객을 연결할 뿐 아니라 AP의 고객과 플라츠 2 고객 간의 관계를 좁히기 위한 방편이다. 최경주는 가 목적성을 갖는 전시이기보다 AP의 성장을 연결하는 레이어이길 바란다. 판화 작업하듯이 직관적 아름다움을 좇으며 커런트 공간을 채우고 비워낸 이유이다. 물론 그의 친구들도 언제나처럼 함께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와 공간 디자이너, 음악가들은 AP의 9주년 기념 전시를 위해 플라츠 2를 조금 들썩이게 할 예정이지만, 다양한 색조와 형태의 발자국을 의미 있게 남길 것이다. AP는 성장하는 중이다. 성장을 통해 매번 변하겠지만, 그 중심엔 늘 최경주가 있다
                                           
2023.02.25-03.11
PLATZ 2
B1 - 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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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x BTP LIVE (at) PLATZ 2
Mandong / 김오키 새턴발라드

그래픽 디자인 : 강주성
공간연출 : 손정민